제3호 | 제3호 2021_신라 고분 출토 기와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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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기와학회
작성일22-03-1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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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고분 출토 기와 연구
본 논문에서는 신라 고분 출토 기와의 특징을 분석하고 사용례를 비교하여 경주지역 고분에서 출토된 신 라 기와의 변화 양상을 살펴봄으로써 신라 기와 연구 분야의 확장을 목표로 하였다. 또한, 신라 기와의 변화 원인은 해당 시기 사회·기술적 배경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측하여 경주지역 신라 기와 변화의 의미를 찾고 자 하였다. 최근 경주지역은 양적 증가한 발굴조사로 심도 있는 기와 연구가 가능해졌으나 아직까지 기와 문양, 제 작법 위주의 연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실정이다. 본 논문의 연구 대상은 신라 고분 출토 기와이다. 시간적 범위는 신라 시대 6~7세기대이며 경주에 석실묘가 등장한 시기를 중심으로 설정하였다. 공간적 범위는 행 정구역상 경주의 도심과 외곽으로 한정하지만, 울주군 일부는 1906년까지 경주에 속하였으므로 포함하도 록 한다. 분석 방법으로는 신라 고분에서 출토되는 기와 중 시간성이 반영되는 속성인 소지 형태, 타날판과 외면 정면 방법, 측면 분할 방법, 하단부 내면 조정 방법을 중심으로 분석하여 특징과 변화 단계 설정하였다. 그 결과 소지의 형태는 점토띠→점토판으로, 타날판은 단판→중판→장판으로, 외면정면은 회전물손질→타날 후 물손질으로, 측면 분할은 전면와도 분할→2차 깎기 조정→와도 후 파쇄로, 하단 내면 조정 방법은 무조 정→깎기 조정→물손질 조정, 와통은 무와통→통쪽와통→원통형와통으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속성을 기반으로 형식 분류를 통해 신라 고분 출토 기와의 사용 양상의 변화를 살폈다. 무와통 제 작법으로 제작한 기와가 6세기 전~ 중반에 등장하여, 6세기 후반까지 이어져 내려오다가 7세기 초 원통형 와 통 제작법 기와가 나타나면서 무와통 제작법 기와는 점차 소멸한다. 원통형와통 제작법 기와가 등장할 때 통 쪽와통 제작법 기와도 소량 제작되었으나, 원통형와통 제작법 기와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다양한 제작법에서 원통형와통 제작법으로 정형화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양상은 신라 기와의 변화 양상과 동일하였다. 기와 제작법의 변화로 기와의 제작 양도 많아지면서 기와의 수요와 공급이 급증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7세기에 들어서면서 기와가 출토되는 고분의 수가 증가하고 출토 기와의 사용량과 사용례도 다양해진 다. 이러한 변화는 기와의 생산과 소비의 사회적 의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신라 왕경이 건설되고 방리제가 실시되면서, 건축 기술이 도입된 것 등의 사회적 현상들이 결국에는 기와 대량 생산을 위한 기술을 도입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이후 와통의 도입이라는 제작 기술 변화로 기와 생산의 대량화가 가능해지면서, 소 비적 측면에서 일반화되는 유기적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판단된다.
A Study on the Roof-Tile of Excavated at Silla Ancient Tombs
Various and in-depth roof-tile studies have been made possible in Gyeongju area recently through quantitatively increased excavation. However, it has yet to go far beyond research focusing on roof-tile patterns and production methods. In order to broaden the scope of such research methods, we will analyze the characteristics of roof-tiles excavated from the ancient tombs of Silla and compare the usage cases to examine the patterns of changes in the roof-tiles excavated from the ancient tombs in Gyeongju. The reason for the change in the Silla flag was thought to have played a major role in the political and technological background of the period, so we wanted to look at the meaning of the Silla flag change in Gyeongju area. In our home town, we reviewed roof-tiles excavated from the Silla ancient tombs in Gyeongju. The target of the study is roof-tile excavated from the ancient tomb of Silla, and the time span will revolve around the 6th and 7th centuries, when the tomb of Seoksil was built in Gyeongju during the Silla Dynasty. The spatial scope was limited to the downtown and outskirts of Gyeongju in the administrative region, but some parts of Ulju County belonged to Gyeongju until 1906. Among the roof tile-making methods, the analysis was centered on the time-reflected manufacturing methods. As a result, it was found that clay is clay webbing → clay plate, tap plate is small plate → middle plate → long plate, surface finish is rotary water damage → tap and water damage, side segmentation is the lateral full-knife split → secondary cutoff → cut after splitting, the finishing method inside the lower part was changed to an unadjusted → adjustment of the clipper → adjustment of the water quality, and the roof-tile can be seen as no roof-tile canisters → a wooden roof-tile canister → a cylindrical roof-tile canister. Based on the type classification, the roof-tiles from the ancient tomb were identical to those from the Silla roof-tile. no roof-tile canisters roof-tile appeared from the 6th century to the middle of the 6th century. It continued down to the late 6th century, and gradually disappeared as the cylindrical roof-tile appeared. When the cylindrical roof-tile appeared, the wooden roof-tile canister was produced in small quantities, and the cylindrical roof-tile took up most of it, which was stereotyped from various production methods to the cylindrical roof-tile. It seems that demand and supply of roof-tiles have increased rapidly due to changes in rooftile production methods and increased production volume of roof-tiles. As the 7th century entered, the number of tombs where roof-tiles were excavated and the amount of roof-tiles excavated increased, along with the variety of use cases. This flow of change can be seen as the social meaning of roof-tile production and consumption. Social phenomena such as the construction of cities and the introduction of building technologies eventually served as a backdrop for the introduction of techniques for roof-tile mass production. Since then, there has been a change in manufacturing technology called the introduction of roof-tile canisters, and as such manufacturing technology changes mass-produce roof-tiles, organic phenomena that are generalized in terms of consumption are judged to occ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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