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호 | 제3호 2021_통일신라시대 한강유역 造瓦樣相에 대한 시론적 검토 - 아차산성‧계양산성 출토기와를 중심으로 -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국기와학회
작성일22-03-14 14:44
조회765회
댓글0건
첨부파일
- 통일신라시대 한강유역 造瓦樣相에 대한 시론적 검토 - 아차산성‧계양산성 출토기와를 중심으로 -.pdf (14.1M) 69회 다운로드 DATE : 2022-03-14 14:44:52
관련링크
본문
통일신라시대 한강유역 造瓦樣相에 대한 시론적 검토 - 아차산성‧계양산성 출토기와를 중심으로 -
본 글에서는 서울 아차산성, 인천 계양산성의 기와 분석결과를 중심으로 통일신라시대 한강유역의 전반 적인 조와양상에 대해 시론적 검토를 시행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서울‧경기지역에서는 삼국이 통합된 이후에도 여전히 단판타날형식이 존속, 중판타날형식과 병 용되는 양상을 보인다. 단판타날은 삼국시대, 중판타날은 통일신라시대로 각각 대응되는 현상은 도성인 경 주지역에 한정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둘째, 중판타날형식 기와는 경주의 도구 사용법을 충실히 반영한 경우와 도구 자체는 유입되었으나 규 격, 사용방식과 같은 기술정보가 전해지지 않은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방의 기와 생산이 도성에서 이동하거나 새로운 기술요소를 숙지한 조와집단, 그리고 재지계 기술에 기반을 둔 조와집단에 의 해 구분‧운영된 것을 시사한다. 셋째, 이 지역의 통일신라시대 기와에는 선대에 존재하였던 백제‧고구려의 기술요소가 혼합되어 색조, 성형틀, 소지 형태 등에 남아있다. 특히, 수막새는 통일신라시대 경주지역을 중심으로 유행하였던 연화문 도상이 사용되지 않고, 반구형 자방을 가진 고구려적 도상이 시문되는 모습을 보인다. 막새 및 마루기와 등 장식용 기와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건물의 의장 개념 역시 도성과 차이가 크다. 넷째, 9세기대에 등장하는 장판타날구의 명문와는 ‘官’, ‘城’ 등 관아시설을 의미하는 문자 및 지역명을 새기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신라 지방행정의 체계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신라 말‧고려 초 즉 신라 의 행정력이 붕괴되고 지방의 호족세력이 득세하는 시기의 소산으로 그 의미를 달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미 개명된지 오래인 고구려의 옛 지명들이 사용되는 것도 그러한 상황을 증명하는 일례라 할 수 있다.
A Study on the Roof-Tile Production in the Han River Basin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 Application to Acha Fortress Site and Gyeyang Fortress Site
In this article, I reviewed the overall the Roof-tile production patterns of the Han River basin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focusing on the analysis of the Roof-tiles at Acha Fortress Site in Seoul and Gyeyang Fortress Site in Incheon. The results are as follows : First, in Seoul and Gyeonggi Province, the single plate format still survives and is used in combination with the medium plate format even after the merger of the three countries. This shows that the traditional plate format style is limited to the Gyeongju area, which is the capital. Second, the Roof-tiles of the medium plate format can be distinguished by the fact that they faithfully reflect the use of tools in Gyeongju and that technical information such as specifications and methods of use has not been delivered. This phenomenon suggests that local tile production was divided and operated by groups that moved from the city or were familiar with new technological elements of the city, and groups based on financial technology. Third, roof tiles from the Unified Silla Period in this area are mixed with technological elements from Baekje and Goguryeo, which existed during the earlier period, and remain in hues, molding frames, and possession forms. In particular, the roof-end tile exhibits Goguryeo paintings with a hemispherical center, which were popular in Gyeongju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The concept of a building that rarely uses decorative tiles is also very different from that of the city. Fourth, most of the lettering roof-tiles of the long plate format, which appeared in the 9th century, mean government facilities such as “官(government offices)” and “城(castles)”. This is not a reflection of the local administration system of Silla, but a result of the collapse of Silla's administrative power during the late Silla and early Goryeo periods and the activities of local family members. The use of the old names of Goguryeo, which had already been renamed a long time ago, is an example of this situation.
[이 게시물은 한국기와학회님에 의해 2022-05-16 13:31:23 원문서비스에서 이동 됨]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